심지어 타이포그래피적 특이성이나 형식적인 기교보다 무미건조한 조판과 단조로움이 독자에게 더 낫다. 상업이나 정치 혹은 종교를 막론하고 선전선동용 타이포그래피에서 이러한 기교는 바람직하고 심지어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한 인쇄물에서는 가장 참신한 시도만이 무관심을 이겨내고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적 타이포그래피에서는 몇몇 한정판을 제외하면 관습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인쇄는 본질적으로 복제의 수단이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물론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도 좋아야 한다. 목적이 광범위할수록 인쇄업자가 지켜야 하는 제한도 엄격해진다. 50부 정도 인쇄하는 소책자로는 실험을 해볼 수 있지만, 5만 부로 같은 실험을 한다면 상식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16쪽 책자에 어울리는 신선함은 160쪽짜리 책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공공성은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이며 책‘으로’ 인쇄